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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오래된 미래 - 라다크에서 배우다 [서평]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 가 있어” 1995년도에 서태지가 부른 이 노래의 가사는 당시 억압된 교육 실태를 비꼬면서 크게 유행했었다. 문명화되고 산업화된 사회는 우리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통해서 살기 위해서는 남과 함께하는 것이 아닌 남을 이겨야 하는 것을 가르쳐왔다. 이런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서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헬레나 노르베이 호지의오래된 미래는 저자가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라다크(Ladakh)라는 지역에서 16년간 머물며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구하고 지켜보며 현대 사회의 대안이 그곳에 있음을 설파한 책이다. 

 

라다크 유목민 (사진 출처: 베스트라다크)

 1전통에 대하여에서 라다크 인들은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농사지은 보리와 밀로 빵을 만들어 먹었으며, 야크로부터 젖과 털가죽을 얹어 버터를 만들거나 실을 얻어 옷을 만들 줄 알았고 사람들의 인분과 동물들의 똥으로 연료로 사용하는 등 한정된 자연 환경 속에서도 풍족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 검약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온 가족은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았고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맞춰진 나이에 의한 또래 집단이 아닌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성장 과정을 거쳤다. 네 것, 내 것이라는 개인적 소유의 개념이 없는 지역 공동체는 언제든지 그들의 손길을 빌려주었고, 불교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이 개별적인 것이 아닌 하나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그 때문인지 라다크에서 싸움이라는 것은 일어날 수 없었고, 이들에게 가장 큰 욕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라다크 인의 삶은 저자의 모든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점점 세상을 보는 그들의 생태학적 방식에 매료 된다.

 

 

 

2변화에 대하여에서는 이러한 자연의 삶을 사는 라다크 인들에게 서구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70년 인도 정부는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관광지 개발에 착수하면서, 중앙아시아 교통의 요충지인 라다크도 결국 외부에 노출되게 된다.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우월한 문명 기술을 가진 서구인들은 쉴 새 없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서 동정어린 눈길로 라다크 사람들이 선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라다크 인들에게 별로 필요 없던 돈을 뿌리고 다니며 외부로터 자신들이 사용하던 문물을 들여왔다. 사람들은 값싼 인도산 쌀과 이제껏 농사에 사용하지 않았던 인체에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하였고 젊은이들은 서구화된 인도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생활은 낙후되어 있고 전통 문화를 저급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라다크의 수도 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다국적 기업의 상표로 보이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더 낳은 삶이라는 것을 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향한다. 그로 인하여 기존의 전통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고 핵가족화, 어설픈 서구 교육 시스템 도입, 열악한 수준의 서구 의료체계 그리고 산업화가 되면서 발생하는 공해와 쓰레기들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실업율과 범죄율은 증가하게 되었고 빈부의 격차도 벌어졌다. 예전보다 더 편하고 풍족하게 살면서도 자신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제 3미래를 향하여에서 이러한 산업화의 실태를 지켜봐온 저자가 라다크에서 진행 중인 전통 문화부흥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 장려에 관한 각종 프로젝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에너지. 예를 들어 라다크는 겨울에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라다크 전통 가옥 벽에 트브롱의 벽이라는 태양열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하여, 석탄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1983LEDeG - 라다크 생태계발그룹이라는 단체를 발족시켜 경제·문화적 측면에서 합리적인 기술적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해 라다크 실정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종 회의와 워크샵·세미나를 개최하며 지역 공동체 회복, 종교 분쟁 방지, 정체성 회복 등 산업화로 개발되기 전에 지키고 있었던 라다크의 문화가 현재 라다크에서 일어나는 산업화의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된 모습을 통해 저자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살아오던 공동체가 문명화·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모습을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내었고, 라다크가 우리 모두에게 과거에 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미래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주로 글로벌 경제화를 통해 야기되는 환경문제나 사회 문제를 물질적인 내용이 주로 거론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정신적인 의문을 주고 있다. 서구인들에 식습관, 교육, 위생, 오락 등에 모든 기준을 맞춘 대중 매체와 주류의 경제구조 속에 속한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국민총생산 - GNP 라는 잣대가 과연 비화폐경제체제나 자급경제체제에 속한 국가의 복지수준을 판가름 하고 그곳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판단하고 있다. GNP는 돈이 움직여야만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이 오염되는 것이나 범죄율이 증가하는 것이나 모두 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GNP는 올라가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측정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이야기 하는 건 정말 모순된 것이 아닐까? 다국적 기업들의 손에 키워진 유전자 식품이 집에서 키웠던 야채보다 더 싸게 공급되고,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과다한 화학 비료로 인하여 오염되고 죽어가는 땅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맹목적으로 서구의 문화만 추구하는 라다크 인들의 모습. 그들은 이제 그들의 할머니와 어머니 품에서 지켜져 내려왔던 과거로부터 그들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문제는 비단 라다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세계화를 추진하며 산업화되어버리고 서구화된 우리들의 병들어져버린 내면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다. 웰빙 열풍에 휩싸여 좀 더 낳은 삶을 위해서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고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고 피부를 위해 흙으로 지어진 전통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산업화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파괴해버리고 잊어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 이다. 세계경제에 항상 영향 받는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 문제를 되돌아보며, 그로 인해 마음마저 얼어붙어가는 이 시기에 어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